이 돌들로도 아브라함의 자손이 되게 하시리라 (마태복음 3:1~9)

양정국 0 3,057
마 3:1-9 이 돌들로도 아브라함의 자손이 되게 하시리라
 
    AD 20년대 이스라엘 백성들은 심히 어려운 때를 살고 있었습니다. 오래 전 유다 백성들이 바벨론 포로에서 귀환하여 성전을 재건하였으나(BC 516) 정치적으로는 여전히 바사(페르시아)의 지배하에 있었습니다. 그러다가 BC 359년 페르시아가 헬라의 알렉산더 대왕에게 패망을 함으로 유다는 헬라제국의 통치하에 들어갔고, 알렉산더 사후 프톨레미의 지배하에 있었고, 그 후에 셀루코스의 지배하에 있게 됩니다. 그러다가 잠시 독립국가를 유지하다가 BC 63년부터 로마제국의 통치하에 들어가게 됩니다. 그러니까 유다 멸망 이후 500여년을 다른 나라의 지배를 받았을 뿐 아니라, AD 20년대에도 로마의 식민지 아래 있었으니 선민이라 하는 이스라엘 백성들의 존심이 무너질 대로 무너졌고, 경제적으로도 대단히 고통스러운 가운데 있었습니다. 그런데다가 유대교 종교지도자들은 타락할 대로 타락해 있었습니다. 대제사장들과 사두개파 사람들은 로마 권력과 결탁하여 권력과 재물에 오염되어 있었고, 바리새파 서기관들은 종교적 위선에 빠져 있었습니다. 그야말로 회칠한 무덤과 같았습니다.

  그런데 놀라운 사실은 그들의 존심이 꺾이면 꺾일수록 반사적으로 더 강조하는 것이 있었으니 그래도 우리는 아브라함의 자손이라는 것입니다. 예수께서 자기를 믿은 유대인들에게 “너희가 내 말에 거하면 참으로 내 제자가 되고 진리를 알지니 진리가 너희를 자유롭게 하리라.” 말씀하시니 그들이 말하기를 “우리가 아브라함의 자손이라. 남의 종이 된 적이 없거늘 어찌하여 우리가 자유롭게 되리라 하느냐?”(요 8:31-33) 이는 자기들의 역사를 몰라서가 아니라 억지 주장입니다. 즉 그들은 아브라함이라는 가면 뒤에 숨어서 모든 위로를 받고자 하였고, 스스로 만든 아브라함이라는 마스터키를 가지고 모든 문제를 다 해결하려 했습니다.

  여기에 대해 예수께서 하신 말씀이 “너희가 혈통으로는 아브라함의 자손인 것 나도 안다. 그러나 너희가 아브라함의 자손이면 아브라함이 행한 일들을 해야 하는데 오히려 너희는 하나님의 진리를 너희에게 말한 나를 죽이려 하는도다. 아브라함은 이렇게 하지 아니하였느니라.” 이에 세례자 요한은 직설적으로 선포하였습니다. 바리새인들과 사두개인들을 향하여 독사의 자식들”이라 하면서 “누가 너희를 가르쳐 임박한 진노를 피하라 하더냐? 그러므로 회개에 합당한 열매를 맺고 속으로 아브라함이 우리 조상이라고 생각하지 말라.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하나님이 능히 이 돌들로도 아브라함의 자손이 되게 하시리라.”

1. 하나님이 능히
  여호와 하나님은 세상 만물을 창조하신 창조주이시며 태초부터 지금까지 그리고 앞으로도 영원히 세상을 다스리시는 만왕의 왕이십니다. 일을 행하시는 여호와, 그것을 만들며 성취하시는 여호와입니다.(렘 33:2) 그 하나님께서 때가 차매 인류사의 새 역사를 쓰기 위해 언약하신 독생자를 세상에 보내 주시되 메시아를 예비하라고 엘리야와 같은 사람 세례자 요한을 먼저 보내신 것입니다. 이 요한은 말라기 선지자가 예언한 것이 성취된 것이며, 이사야 선지자가 선포한 것을 이루고 있는 중입니다. 즉 아브라함, 이사야, 말라기, 사가랴, 엘리사벳, 세례 요한 이들 모두 하나님께서 보내신 사람들이며 하나님 장중에 붙잡혀 위대한 일을 감당한 사람들입니다. 능력의 심히 큰 것이 오직 하나님께 있지 사람에게서 난 것이 아닙니다.

2. 이 돌들로도
  아브라함이라는 가면을 쓰고 스스로 의로운 체 하는 유대인들에게 하나님께서는 길 가에 널려져 있는 이 돌을 가지고도 얼마든지 아브라함의 자손을 만들 수 있다고 하셨습니다. 물론 성경에 보면 돌을 가지고 사람을 만드신 일은 없습니다. 이 말씀의 뜻은 길 가에 있는 하찮은 돌 같은 사람이라 할지라도 얼마든지 아브라함의 자손을 만들 수 있다는 뜻입니다. 능력이 무한하신 하나님께서는 실제로 작은 돌 하나 가지고도 이스라엘의 역사를 바꾸셨습니다. 소년 다윗이 골리앗과 대결할 때 작은 물맷돌 하나 날렸더니 그 어마어마한 골리앗이 그대로 쓰러졌습니다.

  전교인 새벽기도회 때 만난 믿음의 선진들이 원래 대단한 사람들이 아니었습니다. 길 가에 돌들과도 같은 사람들입니다. 아브라함은 유리하는 아람 사람이요, 평범한 목자였고, 야곱은 발뒤꿈치를 잡는 야비한 자, 심지어 버러지 같은 사람이요, 모세는 살인자요, 무능한 무명의 목동이요, 나이가 80세나 되어 마른 막대기와 같은 사람입니다. 에스라는 포로기 바벨론에서 태어난 사람이며, 성모 마리아는 지극히 평범한 시골 처녀, 사도 바울은 죄인 중에 괴수요, 정말 기독교의 원수와 같은 사람이었는데 하나님의 선택과 부르심이 있었고, 여기에 응답하였더니 하나님의 뜻을 이루는데 쓰임 받았고, 그 이름이 영원히 빛나게 되었습니다.
  이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들도 마찬가지입니다. “나는 나이가 많아서 안돼요, 나는 지식이 별로 없어서, 나는 가진 것이 없어서 못해요” 하지만 이는 여호와 하나님을 믿는 사람의 말이라 할 수 없습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능력 없는 것 다 아십니다. 그런데도 성도로, 직분자로 불러 주신 것은 “능력은 내가 줄께. 내가 너와 함께 한다니까. 제발 믿어라.” 그렇습니다.

3. 아브라함의 자손이 되게 하리라.
  하나님께서 유대인들에게 세례 요한을 보내시고, 독생자 예수님을 보내신 목적은 이들이 먼저 예수를 영접하여 하나님의 구원이 온 세상에 전파되는 것입니다. 그러나 본문에서 보듯이 대부분 유대인들이 세례 요한도 배척하고, 메시아이신 예수님도 영접하지 아니 하였습니다.(요 1:9-11)

  결국 세례 요한이 선포한 대로 길가에 있는 돌 같은 이방인들이 먼저 예수를 믿었습니다. 이는 예수님 공생애 기간에 말씀하신 “악한 포도원 농부 비유”가 그대로 된 것입니다.(막 12장) 이 비유의 결론은 건축자들이 버린 돌이 모퉁이의 머릿돌이 되었다는 것입니다. 유대교가 예수를 버렸으나 하나님께서 예수를 교회의 머리로 삼으셨습니다. 이는 하나님의 절묘한 계획입니다. 이방인 가운데 구원 받을 자가 차기까지 유대인들의 눈을 흐리게 하시고, 그들이 넘어지게 함으로 오히려 이방인이 먼저 구원을 받게 한 것입니다. 물론 이방인의 수가 다 차면 그 때 유대인들이 대대적으로 그리스도께 돌아올 것입니다.(롬 10:11-13)

  성도 여러분! 하나님께서 돌 같은 나를 영광스런 백성 삼아 주심을 감사드리며 하나님의 새 역사 건설에 기쁨으로 순종하여 쓰임 받는 우리 모두가 되어야 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