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수 스타일 (마태복음 16:21~25, 고린도후서 4:7~10)

양정국 0 1,209

16:21-25, 고후 4:7-10 예수 스타일

      

   한국교회가 하나님 앞에 통회 자복해야 할 일들이 많지만, 그러나 세상 사람들로부터 그렇게 비난 받을 것은 아닙니다. 요즘 언론에서는 개신교회가 현장예배를 강행한다고 지속적으로 보도를 하고 있는데 이는 언어폭력이며, 종교탄압입니다. 더욱 웃기는 일은 대한민국 국회가 지난 37일 코로나19 확산 방지 종교집회 자제 결의안을 채택한 것입니다. 교회는 교회라는 이름만으로도 비난 받아야 할 때가 많고, 성도는 성도이기 때문에 같은 잘못을 해도 몇 배 더 비난을 받는 이유가 있습니다. 그것은 예수 스타일 때문입니다. 예수 스타일이란 고난 후 영광입니다. 고난이 없으면 예수는 그리스도가 아닙니다. 고난이 없으면 성도가 아니요, 고난이 없으면 교회가 아닙니다. 그러나 사탄 스타일은 정반대로 고난 없는 영광입니다.

   때는 예수님 공생애 26개월 즈음에 예수께서 제자들을 데리고 저 북쪽 가이사랴 빌립보 지방에 가셨습니다. 그곳은 예로부터 우상숭배의 아지트였습니다. 토종 우상 바알 숭배의 근거지였고, 수입 우상 산림신 판 숭배지요, 로마 황제 가이사의 동상을 세워놓고 황제를 숭배하는 곳이었습니다. 이런 곳에서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자신의 정체를 확실히 심어 주고자 하셨습니다. 그때 베드로가 주는 그리스도이십니다. 살아계신 하나님의 아들이십니다.”라고 고백하여 예수께서 대단히 기뻐하셨습니다.

   하지만 베드로조차 거기까지에 불과하였습니다. 예수께서 당신의 고난과 부활을 예고하시니 베드로가 예수님께 항변하였습니다. 고난은 생략하고 영광만 받으라는 것입니다. 이에 예수께서 베드로를 사탄의 짓이라 하면서 크게 책망하셨습니다. 그리고 하신 말씀이 누구든지 나를 따라오려거든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를 것이니라.” 고난 없는 영광은 사탄 스타일이요, 예수 스타일은 고난을 받은 후에 영광입니다. 예수 스타일은 하나님 스타일입니다. 하나님께서 이사야 선지자를 통해 장차 오실 메시아는 고난의 종이라고 다 알려 주셨습니다. “그가 징계를 받으므로 우리는 평화를 누리고, 그가 채찍에 맞으므로 우리는 나음을 받았도다.” 하나님께서는 성자 예수뿐만 아니라, 모든 성도들이 예수 스타일이 되기 원하십니다.

 

  사도 바울은 예수 스타일을 가장 잘 본받은 사람 중에 하나인데, 그가 예수를 만나기 전에는 예수 제자들을 때리고 죽이는 사람이었습니다.(7:58, 8:3) 그런데 그가 예수를 만난 후에는 자기가 고난을 당하는, 매를 맞는 사람이 되었습니다.(고후 11:24-27) 그런데 이런 엄청난 고난을 당한 사도 바울이 패했나요? 망했나요? 당당히 승리하였습니다. 단적인 증거가 빌립보 사건입니다.

   이렇게 예수 스타일을 본받아 고난 뒤에 오는 영광을 깊이 체험한 사도 바울이 고린도교인들에게 편지합니다. 우리가 사방으로 우겨쌈을 당하기도 하고, 답답한 일과 박해를 받기도 하고 거꾸러뜨림을 당하기도 하지만, 결코 패하거나 망하지 아니 한다고 말입니다. 그러면서 우리가 잠시 받는 환난의 경한 것으로 말미암아 지극히 크고 영원한 영광의 중한 것을 이룬다 하였습니다.

 

  성도 여러분! 한국교회가 70년대 이후 지금까지 별 고난 없이 꽃길을 걸어왔습니다. 정말 편안하게 신앙생활 해 왔고, 우아하게 신앙생활 하는 것을 목표로 십자가를 피하는데 익숙해졌고, 고난을 피하는 기술은 잘 발달되었습니다. 그런데 코로나 바이러스 사태를 통해서 하나님께서는 각계각층, 각 사람에게 주시는 메시지가 있는데 한국교회와 우리들에게 주시는 메시지는 예수 스타일로 돌아오라는 것입니다. “고난 없는 영광은 없느니라. 그리스의 고난을 배우라. 고난에 숨겨져 있는 보배를 발견하여라.”라고 말입니다.

오늘 말씀의 연장선상에서 우리는 구레네 시몬이라도 되어야 합니다. 억지로 지는 십자가 말입니다.(27:32) 예루살렘교회가 흩어진 것도 자발적으로 흩어진 것이 아니라, 박해에 의해 흩어진 것입니다. 그런데 거기에 하나님의 깊은 뜻이 있었으니 그 흩어진 자들이 가는 곳마다 복음을 전하여 세계복음화에 기여한 것입니다. 이번 코로나19 파급 효과가 대단히 크고, 그 상처가 깊습니다. 시간이 길어질 수 있습니다. 그런데 이 고난의 때 성도는 달라야 합니다. 예수 스타일로 돌아가야 합니다.

   선지자 하박국의 고백으로 말씀을 맺으려합니다. 비록 무화과나무가 무성하지 못하며, 포도나무에 열매가 없으며, 감람나무에 소출이 없으며, 밭에 먹을 것이 없으며, 우리에 양이 없으며, 외양간에 소가 없을지라도 나는 여호와로 말미암아 즐거워하며 나의 구원의 하나님으로 말미암아 기뻐하리로다.(3:17-18) 이 고백이 오늘 우리의 고백이 되기를 소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