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하나님이여, 내 하나님이여 (시편 22:1~23)

양정국 0 72


22:1-23 내 하나님이여, 내 하나님이여

 

   성경은 인간의 부르짖음에 대한 하나님의 응답이라 표현해도 좋을 것입니다. 구약의 최대 구원 사건 출애굽은 언약 + 부르짖음에 대한 응답입니다.(2:23) 가나안 땅에 들어가서도 불순종과 패역을 반복한 이스라엘 백성들이 고난 가운데 부르짖었더니 여호와께서 그들을 건져 주셨습니다.(6:1) 구약의 시인들은 여호와께 부르짖는 사람들입니다. 시편에 탄원시가 39편 포함되어 있습니다.

본문 시편 22편을 지은 다윗도 여호와께 부르짖는 사람입니다. 그가 평생 하나님과 동행하며 하나님의 뜻을 다 이루었는데, 실제로 그의 삶은 고난과 연단의 연속이었습니다. 특히 사울 왕에게, 그리고 자기 아들 압살롬을 통해서 말입니다. 이런 고난의 날에 다윗이 할 수 있는 것은 하나님께 부르짖는 것 밖에 없습니다. “나는 벌레요 사람이 아니라. 사람의 비방 거리요 백성의 조롱거리입니다.” “내 하나님이여! 내 하나님이여! 어찌 나를 버리셨나이까.”

그런데 이 시편이 중요한 것은 이는 그 때 다윗 자신의 부르짖음인 동시에, 후에 세상에 오신 구주 예수님의 부르짖음이기 때문입니다. 주 예수께서 십자가에서 엘리 엘리 라마 아자브타니부르짖었습니다. 더욱이 다윗의 고백과 얼마나 정확하게 일치하는지. “개들이 나를 에워쌌으며 악한 무리가 나를 둘러 내 수족을 찔렀습니다. 그들이 나를 주목하여 보고 내 겉옷을 나누며 속옷을 제비 뽑습니다.” 그런데 여러분! 이 시편을 포함하여 모든 탄원시에는 비밀이 있으니 전반부에서는 탄원, 후반부에서는 구원을 확신하며 감사 찬송을 드린 것입니다. 즉 예수께서 십자가에서 내 하나님이여! 내 하나님이여! 어찌 나를 버리셨나이까.” 절규하셨는데 이는 좌절과 절망 가운데 하나님을 원망한 것이 아니라, 이 시편에 계속 이어지는 내용 그대로 하나님의 구원을 확신하며 소망 가운데 부르짖은 것입니다.

성도 여러분! 최근 한국교회는 코로나19 재확산의 매체가 되어 권위와 이미지가 땅에 떨어지고 말았습니다. 세상 사람들의 조롱거리가 되었습니다. 한국교회가 본문에 있는 대로 사람의 비방 거리요 백성의 조롱거리가 되었습니다. 한편 본문의 다윗도, 십자가상의 예수님도 이런 지경에 이른 것이 자신의 죄 때문이 아니라 의인의 고난을 당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나 한국교회가 당하고 있는 고난과 부끄러움은 우리의 책임이 더 큰 것을 인정해야 합니다. 한국교회는 하나님께 엎드려 회개하고 부르짖을 때입니다. 성도의 특권은 하나님께 부르짖는 것입니다. 부르짖으면 크고 하나님께서 크고 은밀한 일을 보여 주십니다.(33: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