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드로와 요한 들여다보기 (요 21:18~23,행 3:1~10)

양정국 0 1,886

21:18-23, 3:1-10 베드로와 요한 들여다보기

 

   복음서에서 발견하는 베드로와 요한의 관계는 라이벌입니다. 한 동네 출신이면서도 누가 크냐?” 하는 문제로 계속 다툰 것입니다. 갈등의 심각성은 오늘 본문에서도 잘 보여 주고 있습니다. 부활하신 예수께서 베드로에게 장차 순교할 것을 예고하자 베드로는 당장 요한은 어떻게 하시겠냐고 묻습니다. 자기만 죽기 싫다는 것이지요. 이런 갈등의 원인은 여러 가지가 있지만, 근본적인 원인은 둘 다 자기를 부인하지 않았기 때문이요, 자기가 더 좋은 자리를 차지하려고 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놀랍고도, 감사한 것은 예수님 부활 승천 후 베드로와 요한 관계는 공생애 때와는 정반대로 친밀함을 넘어 둘이 환상의 콤비가 되었습니다. 사도행전에 보면 베드로와 요한이 기도하러 같이 성전에 올라갔고, 같이 심문을 받으면서 하나였고, 사마리아에 갈 때도 같이 갔습니다.

   특히 사도 요한이 요한복음을 기록한 때는 AD 90년대인데 사도 베드로도, 사도 바울도 순교한지 30여년이 흐른 때입니다. 요한이 성령의 감동으로 60여년 전 주님을 회고하면서 요한복음을 기록한 것인데, 예수께서 말씀대로 이미 순교한 사도 베드로를 기억하며 21장을 기록했습니다. 그러니 사도 요한이 이 글을 기록할 때 예수님도 보고 싶었지만, 사도 베드로도 얼마나 보고 싶었을까요? 잠시 앙숙이었지만, 그 후에 영원히 하나가 된 형님이 얼마나 그리웠을까요?

   여러분! 그러면 이들이 어떻게 하나가 되었을까요? 두 사람 다 부활하신 주님을 만났고, 둘 다 성령을 충만히 받았습니다. 그리고 자기를 부인하니까 예수님과 관계가 온전히 회복이 되었고, 주 안에서 서로가 너무나 소중한 동역자요, 형제인 것입니다. 성령이 단단한 줄로 하나 되게 하셨습니다.(4:3-4)

   성경에 보면 주 안에서 마땅히 하나가 되어야 하는데 서로 반목하고, 미워하기도 하고, 앙숙인 경우가 종종 있었습니다. 빌립보교회 여자 중직자 유오디아와 순두게가 그러하였고, 고린도교회 네 개 분파에 속한 교인들이 그러하였습니다. 여기에 대한 성경의 답변은 오직 그리스도 예수의 마음을 품으라. 그래서 자기를 비우라는 것입니다. 우리가 예수 십자가를 믿는다는 것은 단지 예수께서 십자가에 못 박힌 사실만 인정하는 것 정도가 아니라, 예수 십자가에서 나도 못 박혀 같이 죽었고, 부활하셨기 때문에 내 안에 그리스도께서 사는 것임을 믿고 그런 삶을 사는 것입니다.

   성도 여러분! 우리는 복음서의 베드로와 요한이 아니라, 사도행전의 베드로와 요한이 되어야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