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사의 분량이 곧 믿음의 분랑입니다 (누가복음 17:11~19)

양정국 0 1,018

[성경본문] 누가복음 17:11~19 

11. 예수께서 예루살렘으로 가실 때에 사마리아와 갈릴리 사이로 지나가시다가 12. 한 마을에 들어가시니 나병환자 열 명이 예수를 만나 멀리 서서 13. 소리를 높여 이르되 예수 선생님이여 우리를 불쌍히 여기소서 하거늘 14. 보시고 이르시되 가서 제사장들에게 너희 몸을 보이라 하셨더니 그들이 가다가 깨끗함을 받은지라 15. 그 중의 한 사람이 자기가 나은 것을 보고 큰 소리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며 돌아와 16. 예수의 발 아래에 엎드리어 감사하니 그는 사마리아 사람이라 17.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열 사람이 다 깨끗함을 받지 아니하였느냐 그 아홉은 어디 있느냐 18. 이 이방인 외에는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러 돌아온 자가 없느냐 하시고 19. 그에게 이르시되 일어나 가라 네 믿음이 너를 구원하였느니라 하시더라



눅 17:11-19 감사의 분량이 곧 믿음의 분량입니다


  모세 때 제정한 3대 절기가 유월절, 칠칠절, 수장절인데 그 중에 두 번이 추수감사절입니다. 칠칠절은 맥추감사절, 수장절은 추수감사절인데(출 34:22, 신 16:9-11) 감사절을 지키는 방법은 하나님께서 복을 주신대로 힘을 헤아려 자원하는 예물을 드리고 하나님 앞에서 즐거워하는 것입니다.

  오늘 본문을 통해서 믿음은 곧 감사인 것을 발견합니다. 즉 감사의 분량이 그 사람의 믿음의 분량입니다. 10명의 나병환자가 예수로 인해 깨끗이 고침을 받았는데도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며 돌아와 예수님께 감사한 사람은 한 사람뿐이었습니다. 이에 예수께서 “아홉은 어디 있느냐? 물으신 후, 감사하는 그에게 “일어나 가라. 네 믿음이 너를 구원하였느니라.” 말씀하셨습니다. 여기서 구원이란 영혼의 구원, 영생입니다. 즉 믿음과 감사는 동의어입니다. 

  믿음의 선진들은 한결같이 감사의 사람이었습니다. 다니엘은 그 어떤 신에게라도 기도하면 사자 굴에 집어넣는다는 조서에 왕의 도장이 찍힌 것을 알면서도 여전히 하루 세 번씩 무릎을 꿇고 기도하며 그의 하나님께 감사하였습니다. 그가 하나님의 전능하심을 온전히 믿지 못했다면 이런 감사를 드릴 수 없었을 것입니다. 바울과 실라도 빌립보 감옥에서 여전히 감사를 드렸습니다. 하나님을 온전히 믿는 믿음이 아니고서는 이렇게 할 수가 없었을 것입니다. 바울 당시 마게도냐 성도들도 극한 핍박 가운데서 감사가 넘쳤습니다. 예루살렘 교회를 위해 힘에 지나도록 자원하여 풍성한 연보를 넘치게 드렸습니다. 

  한편 출애굽한 이스라엘 백성들은 하나님의 그 은혜와 사랑을 받았으면서도 감사는커녕 불평불만으로 가득했습니다. 그들이 경험한 놀라운 일들은 다 어디로 갔을까요? 그들이 받은 그 큰 은혜는 다 어디로 갔을까요? 결국 광야에 다 엎어져 죽었습니다. 여러분! 믿음이 없이 받은 은혜는 밑 빠진 독에 물 붓기와 같아서 자기 안에 남아 있는 것이 없게 됩니다. 본문에 나병에서 고침 받은 9명도 마찬가지입니다. 믿음이 없이 은혜를 받으니 나병에서 고침 받아도 감사도 없고, 경배도 없었습니다. 이 시대에 우리는 진정 감사하는 사람이 되어야지 감사를 잃어버리고 산다면 참으로 비참한 사람입니다. 

  우리가 믿음의 생각으로 생각해 보면 은혜가 아닌 것이 없고, 믿음의 눈으로 바라보면 감사가 아닌 것이 없습니다. 믿음은 곧 감사입니다. 특히 코로나19는 인류에게 많은 피해도 입혔지만, 그러나 정말 중요한 것을 확인하고 돌이키는 기회를 제공하였으니 그럼에도 불구하고 감사하는가? 맥추감사절을 계기로 우리 안에 믿음과 감사가 회복되어 범사에 감사하는 성도로 살기를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