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씀에 붙잡힌 사람 (사도행전 18:1~11)

양정국 0 837

[성경본문] 사도행전 18:1~11 

1. 그 후에 바울이 아덴을 떠나 고린도에 이르러 2. 아굴라라 하는 본도에서 난 유대인 한 사람을 만나니 글라우디오가 모든 유대인을 명하여 로마에서 떠나라 한 고로 그가 그 아내 브리스길라와 함께 이달리야로부터 새로 온지라 바울이 그들에게 가매 3. 생업이 같으므로 함께 살며 일을 하니 그 생업은 천막을 만드는 것이더라 4. 안식일마다 바울이 회당에서 강론하고 유대인과 헬라인을 권면하니라 5. 실라와 디모데가 마게도냐로부터 내려오매 바울이 하나님의 말씀에 붙잡혀 유대인들에게 예수는 그리스도라 밝히 증언하니 6. 그들이 대적하여 비방하거늘 바울이 옷을 털면서 이르되 너희 피가 너희 머리로 돌아갈 것이요 나는 깨끗하니라 이 후에는 이방인에게로 가리라 하고 7. 거기서 옮겨 하나님을 경외하는 디도 유스도라 하는 사람의 집에 들어가니 그 집은 회당 옆이라 8. 또 회당장 그리스보가 온 집안과 더불어 주를 믿으며 수많은 고린도 사람도 듣고 믿어 세례를 받더라 9. 밤에 주께서 환상 가운데 바울에게 말씀하시되 두려워하지 말며 침묵하지 말고 말하라 10. 내가 너와 함께 있으매 어떤 사람도 너를 대적하여 해롭게 할 자가 없을 것이니 이는 이 성중에 내 백성이 많음이라 하시더라 11. 일 년 육 개월을 머물며 그들 가운데서 하나님의 말씀을 가르치니라



행 18:1-11 말씀에 붙잡힌 사람 


  하나님의 말씀은 생명의 양식이기에 날마다 맛있게 먹어야 하고, 하나님의 말씀은 진리이기에 내 생각이 말씀으로 변화를 받아야 하며, 하나님의 말씀은 성령의 검이기에 말씀을 의지하면 세상을 승리하게 됩니다. 이렇게 말씀과 깊은 관계에 있는 것을 “말씀에 붙잡혔다”라고 표현합니다.(본문 5절) 즉 사도 바울은 붙잡혔는데 자유자요, 자유자인데 붙잡힌 사람입니다.

  세상에 그 무엇에 붙잡히지 않은 사람은 한 사람도 없습니다. 만유인력에 붙잡혀 있고, 시간과 공간에 붙잡혀 삽니다. 또한 영적 세계에서도 그러하여 흑암과 마귀에 붙잡힌 사람이 있는가 하면, 성령과 말씀에 붙잡힌 사람도 있습니다.(시 124:7, 딤후 2:25-26)  

  고린도에서 어렵게 전도하던 사도 바울에게 하나님께서 엄청난 세 가지 은혜를 베푸셨으니 ① 바울과 복음을 위해 목숨까지 거는 동역자 아굴라와 브리스길라를 붙여 주셨고 ② 실라와 디모데를 통해 데살로니가의 기쁜 소식을 들려 주셨으며 ③ 주님께서 직접 말씀해 주시기를 “두려워하지 말며 침묵하지 말고 말하라. 내가 너와 함께 있으매 어떤 사람도 너를 대적하여 해롭게 할 자가 없을 것이니 이는 이 성중에 내 백성이 많음이라.”이에 바울이 말씀에 붙잡혀 더욱 담대하게 복음을 전하여 고린도교회를 세운 것입니다. 

  그러면 말씀에 붙잡혔다는 것이 어떤 것인지 더 자세히 살펴보면, 먼저 사탄 마귀가 사람 눈에 보이지 않지만 분명히 살아서 역사합니다. 그래서 하와처럼 마귀에게 미혹되기도 하고, 마귀에게 붙잡히기도 합니다. 그런데 눅 8:29에서 마귀에게 붙잡힌 것은 헬라어는 쉬나르파조라는 말을 사용하였습니다. 이는 사람이 저항할 수 없도록 꽉 붙들려서 끌려다니는 상태입니다. 그래서 그 사람의 마음과 생각뿐 아니라, 의지와 인격까지 다 빼앗긴 것입니다. 그런가 하면 본문에 바울이 말씀에 붙잡혔다 하였는데 여기에 사용된 헬라어는 쉬네코입니다. 쉬네코란 깊은 연대를 이루다, 사랑으로 푹 빠지다, 집중하다, 헌신하다 라는 뜻입니다. 그러므로 예수에 붙잡힌 사람, 성령에 붙잡힌 사람은 그의 인격과 개성과 마음과 생각을 존중받으면서 온전한 인도를 받는 것입니다. 마치 성경 기록자들이 성령의 감동으로 기록하되 각각 자신의 신앙과 인격, 개성과 상황을 살리면서 기록한 것과 같습니다. 종교개혁자들도 말씀에 붙잡힌 사람들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붙잡히되 거룩하고, 선한 것에 붙잡혀야지(쉬네코), 악한 것에 붙잡히면(쉬나르파조) 사람 망가지고, 인생 실패하게 됩니다. 우리 모두 성령이 충만한 가운데 말씀에 붙잡힌바 되어 하나님의 뜻을 다 이루어드립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