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이는 하나님, 들리는 하나님 (요한복음 14:8~11,22~24)

양정국 0 360

[성경본문] 요한복음 14:8~11,22~24

8. 빌립이 이르되 주여 아버지를 우리에게 보여 주옵소서 그리하면 족하겠나이다 9. 예수께서 이르시되 빌립아 내가 이렇게 오래 너희와 함께 있으되 네가 나를 알지 못하느냐 나를 본 자는 아버지를 보았거늘 어찌하여 아버지를 보이라 하느냐 10. 내가 아버지 안에 거하고 아버지는 내 안에 계신 것을 네가 믿지 아니하느냐 내가 너희에게 이르는 말은 스스로 하는 것이 아니라 아버지께서 내 안에 계셔서 그의 일을 하시는 것이라 11. 내가 아버지 안에 거하고 아버지께서 내 안에 계심을 믿으라 그렇지 못하겠거든 행하는 그 일로 말미암아 나를 믿으라

22. 가룟인 아닌 유다가 이르되 주여 어찌하여 자기를 우리에게는 나타내시고 세상에는 아니하려 하시나이까 23.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사람이 나를 사랑하면 내 말을 지키리니 내 아버지께서 그를 사랑하실 것이요 우리가 그에게 가서 거처를 그와 함께 하리라 24. 나를 사랑하지 아니하는 자는 내 말을 지키지 아니하나니 너희가 듣는 말은 내 말이 아니요 나를 보내신 아버지의 말씀이니라


요 14:8-11, 22-24 보이는 하나님, 들리는 하나님


  하나님은 영(靈)이시라 시공을 초월하는 신비한 장점이 있는가 하면, 우리 사람의 입장에서는 영이신 하나님을 볼 수 없기 때문에 하나님을 인정하는데 큰 장애가 되는 것이 사실입니다. 여기에 필요한 것이 믿음입니다. 그러나 구약시대 언약의 백성 이스라엘이 쉬지 않고 우상을 만들고 섬긴 가장 큰 이유는 하나님이 보이지 않기 때문입니다. 모든 우상은 눈에 보입니다. 나무나 돌이나 금이나 은으로 만들었기 때문에 눈에 보이고 손으로 만져지고 자기 앞에 있음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결정적인 차이는 우상은 말을 할 수 없습니다. 생명도 없습니다. 하지만 성삼위 하나님은 눈에는 보이지 않아도 말씀하시는 하나님입니다. 말씀으로 천지만물을 창조하시고 말씀으로 세상을 다스리십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살았고 권세가 있어서 그대로 이루어집니다. 


  여호와께서 말씀하시는 하나님인 것은 사람들에게 들으라는 것입니다.(신 6:4, 호 4:1 등등) 여기서 중요한 것은 말씀을 듣되 믿음으로 들어야 합니다. 믿음은 들음에서 나오고 들음은 말씀으로 말미암기 때문입니다.(롬 10:16-18) 그런데도 언약의 백성조차 하도 믿지 아니 하니 하나님께서 특단의 방법으로 하나님을 보여 주기로 하셨으니 곧 하나님의 독생자가 사람이 되어 세상에 오신 것입니다.(요 1:14) 그러므로 예수 그리스도는 보이는 하나님이시며 들리는 하나님입니다. 그런데도 빌립이 아버지를 보여 달라 할 때 예수님께서 “나를 본 자는 아버지를 보았거늘 어찌하여 아버지를 보이라 하느냐?” 


  동시에 성령의 감동으로 기록된 성경은 하나님의 말씀이며, 하나님의 칙서입니다. 왕정시대 왕이 직접 오지 않아도 왕의 메시지(어명)가 오면 왕이 온 것과 동일한 것같이 성경은 하나님의 칙서로 하나님의 권세와 능력을 갖고 있습니다. 이를 잘 보여 준 것이 이방인 백부장 고넬료입니다. 말씀을 전하러 온 베드로 앞에 절을 하고 고백하기를 “우리가 하나님 앞에 있습니다.” 정말 놀라운 일입니다. 그랬더니 말씀 받을 때 성령이 임하였고, 그곳의 모든 이방인들이 세례를 받았습니다. 여러분! 말씀 앞에 있는 것은 하나님 앞에 있는 것입니다. 본문 23-24절에서 예수께서 말씀하신 대로 예수님을 사랑하는 사람은 말씀을 사랑하고 그 말씀에 순종합니다. 예수님의 말씀은 하나님의 말씀이기 때문입니다. 실제로 하나님의 말씀을 버린 사울 왕은 결국 하나님께 버린바 되었습니다.(삼상 15:22-23) 하나님의 말씀은 누구의 입을 통해 전달이 되던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엘리사 사환을 통해서 전달이 되어도 그대로 이루어졌듯이 말입니다. 여러분! 말씀을 말씀으로 믿어야 합니다. 말씀을 통해 하나님을 만나야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