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믿음은 바라는 것들의 실상이요 보이지 않는 것들의 증거니
2. 선진들이 이로써 증거를 얻었느니라
17. 아브라함은 시험을 받을 때에 믿음으로 이삭을 드렸으니 그는 약속들을 받은 자로되 그 외아들을 드렸느니라
18. 그에게 이미 말씀하시기를 네 자손이라 칭할 자는 이삭으로 말미암으리라 하셨으니
19. 그가 하나님이 능히 이삭을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리실 줄로 생각한지라 비유컨대 그를 죽은 자 가운데서 도로 받은 것이니라
히 11:1-2, 17-19 부활에서 고난 바라보기
우리가 등산을 할 때 올라 갈 때와 내려 올 때 많은 차이가 있습니다. 그런데 올라갈 때부터 정상에 있는 자신의 모습을 생각하며 올라가면 그리 힘들지 않습니다. 믿음의 안목이 바로 이것입니다. 고난에서 부활을 바라보는 것보다는 부활에서 고난을 바라보는 것입니다. 예수님이 그러하셨고, 아브라함을 비롯하여 믿음의 선진들이 그러하였습니다. 그래서 믿음의 특징은 바라는 것들의 실상이요, 보이지 않는 것들의 증거입니다. 미리 앞당겨서 보는 것이 믿음입니다. 찬송가 가사에서도 “무덤에서 부활한 주를 생각할 때에 환난이나 죽음도 두려울 것 없으리. 승전가를 부르며 주를 따라 가리라.”
예수님의 관점은 성찬식 마치고 서로 다툰 제자들에게 책망을 한 것이 아니라, 엄청난 언약을 주신 것에서도 잘 드러납니다. 하나님의 나라를 너희에게 맡기겠다. 내 상에서 먹고 마실 것이다. 제자들의 현재 모습만 바라보고 실망하지 않고, 며칠 후에 성령 받아 변화될 제자들의 모습을 바라보셨기 때문입니다.
아브라함이 언약의 아들 이삭을 번제로 드릴 수 있었던 것도 믿음의 안목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즉 영광에서 고난을 바라보았습니다. 여호와께서 그에게 이미 언약한 것이 있습니다. “네 자손이라 칭할 자는 이삭으로 말미암으리라.”(창 21:12) 그런데 씨도 받지 않은 이삭을 번제로 드리라는 것은 이 언약과 맞지 않습니다. 이에 아브라함은 자기 편의에 따라 말씀을 이용한 것이 아니라, 두 가지 말씀 모두가 이루어지는 것을 택했으니 하나님이 능히 이삭을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리실 줄로 확신한 것입니다. 이렇게 해서 아브라함의 믿음이 증거가 되어 하나님께서 그를 믿음의 조상, 복의 근원으로 삼으셨습니다.
여러분! 아브라함을 믿음의 조상으로 세우시고, 우리들을 아브라함의 후손으로 삼으신 하나님의 뜻이 무엇일까요. 우리들도 아브라함처럼 믿음의 사람이 되라는 것입니다. 아브라함처럼 믿음의 관점에서 생각하고, 행동하라는 것입니다.(요 8:39-40) 성도는 아브라함의 자손이며, 아브라함과 함께 유업을 받을 사람입니다.(갈 3:29) 그러면 고난에 대하여 생각하는 것과 고난에 대처하는 것이 세상 사람과는 달라야 합니다. 즉 믿음의 관점, 부활에서 고난을 바라보기, 영광의 관점에서 고난을 바라보기, 이렇게 하면 바울의 고백과 일치하게 됩니다. 나는 어떠한 형편에든지 자족하기를 배웠노니 내게 능력 주시는 자 안에서 내가 모든 것을 할 수 있느니라.(빌 4:11-13)
여러분! 우리는 지금 사순절을 지키고 있습니다. “자원하는 십자가” “환난 중에도 즐거워하나니” “부활에서 고난 바라보기” 말씀이 열매 맺기를 소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