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리가 너희를 자유롭게 하리라 (갈라디아서 2:11~16)

양정국 0 360

[성경본문] 갈라디아서 2:11~16

11. 게바가 안디옥에 이르렀을 때에 책망 받을 일이 있기로 내가 그를 대면하여 책망하였노라 12. 야고보에게서 온 어떤 이들이 이르기 전에 게바가 이방인과 함께 먹다가 그들이 오매 그가 할례자들을 두려워하여 떠나 물러가매 13. 남은 유대인들도 그와 같이 외식하므로 바나바도 그들의 외식에 유혹되었느니라 14. 그러므로 나는 그들이 복음의 진리를 따라 바르게 행하지 아니함을 보고 모든 자 앞에서 게바에게 이르되 네가 유대인으로서 이방인을 따르고 유대인답게 살지 아니하면서 어찌하여 억지로 이방인을 유대인답게 살게 하려느냐 하였노라 15. 우리는 본래 유대인이요 이방 죄인이 아니로되 16. 사람이 의롭게 되는 것은 율법의 행위로 말미암음이 아니요 오직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말미암는 줄 알므로 우리도 그리스도 예수를 믿나니 이는 우리가 율법의 행위로써가 아니고 그리스도를 믿음으로써 의롭다 함을 얻으려 함이라 율법의 행위로써는 의롭다 함을 얻을 육체가 없느니라



갈 2:11-16 진리가 너희를 자유롭게 하리라


  사람이 예수를 믿어 구원을 받았으면 끊임없이 변화를 받아야 합니다.(롬 12:2) 그런데 문제는 타성이 있어서 여간해서는 바꾸지 않는 것도 있습니다. 심지어 성령 충만 받은 성도조차도 어떤 것에 대해서는 바꾸려 하지 않는 부분들이 있습니다. 초대 예루살렘교회 사도들과 성도들이 그러했습니다. 예수께서 승천하시면서 당부하시기를 “예루살렘과 온 유대뿐 아니라 사마리아와 땅 끝까지 내 증인이 되리라.”(행 1:8) 말씀하셨음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나아가지 않았습니다. 이는 그들이 유대 율법주의 사고를 벗어버리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유대주의란 하나님께서 유대인들만 사랑하신다는 생각이요, 율법주의란 믿음만이 아니라 여전히 율법(할례, 절기, 선행)을 행해야 한다는 생각입니다. 


  이로 인해 여러 가지 사건이 발생했으니 (1) 베드로가 성령의 지시로 고넬료 집에 가되 탐탁지 않게 간 것과 (2) 이 소식을 들은 예루살렘교회 사도들은 베드로를 비난한 것과 (3) 심지어 오늘 본문에 기록되었듯이 베드로가 안디옥교회 이방인 성도들과 식사 하던 중 예루살렘교회가 보낸 사람들이 도착하자 슬그머니 자리를 피한 일까지 있었습니다. 이런 일련의 사건을 통해서 베드로와 유대 사도들은 어지간히 생각을 바꾸려 하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을 부르신 목적은 처음부터 모든 민족이 복을 받게 하려 하심입니다. 이사야를 통해 계시하신 메시아는 이방의 빛인데도 말입니다. 

  여기서 사도 베드로와 사도 바울을 비교해 보면 바울은 바리새파 중에 바리새파 출신으로 율법에 매였던 사람인데 그가 예수를 만난 후 완전히 바뀌었습니다. 율법주의로부터 완전 탈출하였고 복음이 주는 자유를 누렸습니다. 그래서 이방인의 사도가 되었습니다. 그런가 하면 베드로는 예수님을 3년간 따라 다녔고 예수 십자가와 부활을 체험하였음에도 그의 마음과 생각은 쉽게 바뀌지 않았습니다. 여전히 사마리아인과 이방인 만나는 것을 꺼렸습니다. 


  이는 공동체에도 그대로 적용이 됩니다. 예루살렘교회는 모교회요, 성령 충만하여 모이기를 힘쓰고 사랑의 떡을 떼며 물질까지도 유무상통하였습니다. 하지만 그들은 유대 율법주의 생각을 버리지 못함으로 유대교에 의한 박해를 받아야 했고, 교인들이 흩어지지 않을 수 없었다. 이에 반해 수리아 안디옥교회는 헬라인 중심의 교회로 이방세계에 대해 열려 있는 사람들입니다. 복음이 들어가고, 성령이 임하시니 복음을 들고 이방 세계로 달려 나아갔습니다. 여러분! 엄연한 진리가 있는데도 여전히 자기 생각, 자기 고집에 빠져 사는 것은 큰 죄입니다. 진리 앞에서 자기 생각 내려놓고 끊임없이 변화를 받아야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