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는 것 같이 하여 참았으며 (히브리서 11:24~29)

양정국 0 601

[성경본문] 히브리서 11:24~29

24. 믿음으로 모세는 장성하여 바로의 공주의 아들이라 칭함 받기를 거절하고 25. 도리어 하나님의 백성과 함께 고난 받기를 잠시 죄악의 낙을 누리는 것보다 더 좋아하고 26. 그리스도를 위하여 받는 수모를 애굽의 모든 보화보다 더 큰 재물로 여겼으니 이는 상 주심을 바라봄이라 27. 믿음으로 애굽을 떠나 왕의 노함을 무서워하지 아니하고 곧 보이지 아니하는 자를 보는 것 같이 하여 참았으며 28. 믿음으로 유월절과 피 뿌리는 예식을 정하였으니 이는 장자를 멸하는 자로 그들을 건드리지 않게 하려 한 것이며 29. 믿음으로 그들은 홍해를 육지 같이 건넜으나 애굽 사람들은 이것을 시험하다가 빠져 죽었으며


히 11:24-29 보는 것 같이 하여 참았으며


  본문은 모세의 믿음을 증거한 내용인데 믿음의 본질적인 속성에 대해 가르쳐 주고 있습니다. 믿음은 믿음의 선택을 동반하게 되어 있는데 모세는 공주의 아들 대신 하나님의 종으로, 잠시 죄악의 낙보다 가치 있는 고난을, 애굽의 모든 보화 대신 그리스도를 위한 수모를 선택하였습니다. 이는 하늘의 상과 그것을 주시는 하나님을 바라보았기 때문입니다.


  한편 모세는 보이지 아니하는 자를 보는 것 같이 하여 참았다 하였습니다. 보이지 아니하는 자란 영이신 하나님이요, 보는 것 같이 하여 참았다는 것은 마치 보는 듯이 바라보면서 견디어냈다는 것입니다. 여러분! 눈에 보이는 것만 보고 사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영적 실체를 보는 사람이 있습니다. 그 결정적인 근거가 가데스바네아 사건입니다. 보이는 것만 보고 온 10명은 정복불가론을 주장하였고 그렇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여호수아와 갈렙은 영적 실체를 보았으니 “그들의 신은 이미 떠났고 여호와는 우리와 함께 계신다.” 말씀 앞에서는 百聞이 不如一見이 아닙니다. 제자 도마를 보십시오. “보여주면 믿을게”가 아니라 “믿으면 보입니다.” 이에 예수께서 “너는 나를 본 고로 믿느냐? 보지 못하고  믿는 자들은 복되도다.”


  그런데도 유대인들을 표적 엄청 좋아했습니다. “유대인은 표적을 구하고” 이에 예수께서 “악하고 음란한 세대가 표적을 구하나 내가 보여 줄 것은 선지자 요나의 표적 밖에는 보여 줄 것이 없느니라.” 너희가 지금 나를 믿으면 장차 내가 부활할 것이 보인다는 말씀입니다. 믿으면 과거도 보이고, 미래도 보입니다. 믿으면 태초에 하나님께서 천지 만물을 창조하신 것도 보입니다. 믿으면 아브라함처럼 장차 오실 메시아가 보입니다.(요 8:56)


  출애굽의 지도자 모세도 날이면 날마다 하나님을 만난 것이 아닙니다. 불순종하는 이스라엘 백성들, 목이 곧은 그들을 거칠고 험한 광야에서 이끌어 갈 때 보통 어렵고 힘든 일이 아닙니다. 그런데 이런 40년간 이끌어 온 것은 보이지 않는 분을 마치 보는 듯이 바라보면서 견뎠기 때문입니다. 눈에는 안 보여도 하나님께서 분명히 살아계시며 패역한 백성이지만 여호와께서 함께 계시며, 더 중요한 것은 여전히 말씀하시는 하나님이시기 때문입니다.


  성도 여러분! 우리는 눈에 보이는 것만 보며 사는 사람입니까? 믿음으로 보는 것을 보는 사람입니까? 믿음이 없이는 하나님을 기쁘시게 할 수 없습니다. 예수께서 말씀하신 대로 보는 것을 보는 눈이 복이 있습니다. 우리 모두 모세처럼 보이지 않는 하나님을 마치 보는 듯이 바라보면서 견디어내야 합니다.